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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은 솔직히 쓰레기였고 껍데기였다.
나는 스토리가 없다.
스토리를 쓰겠다.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겠다.

비기너스


포기하지 않는 이상, 매순간 비기너스.
사랑 사랑 사랑.
사람다움.



일기


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는다. 정말 이 책을 사랑한다. 책은, 운명을 무겁게 감당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찬연한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티끌처럼 흩어지는 생의 다양한 우연들은 나의 어떤 '의지'(이 의지는 니체적인 의미로, 나라는 어떤 형체를 이룩하는 '힘'의 자장이라고 보는 게 좋을 듯?)에 의해 '운명'으로 포획된다. 우연을 나의 운명으로 감당하기 시작할 때 인간은 지상 가장 가까이에서 삶 그 자체를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데올로기나 환타지에 휘둘리지 않는 가장 문학적인 삶 말이다.
 테레사는 가장 문학적인 주체로 등장한다. 그녀는 안티고네이고 이피게네이아이다. 테레사는 어머니의, 토마스의, 전체주의의 폭력에 의해 수난의 자리에 처해 고통을 당하는 자이다. 또 그녀는 갖가지 우연을 기꺼이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용기있는 자이다. 처음엔 우연을 자신의 삶에 개입시키길 원하지 않았던 토마스도 테레사를 사랑하면서 운명을 긍정하고 삶을 노래하는 법을 배운다. 끝내 이 두 사람이 누리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한없이 무거운 삶을 인정하고 감당하고 긍정한 대가다.
 다시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사실 60페이지 밖에 못 읽었다. 끝까지 다 읽고나면,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를 지껄였다고 부끄러워질지도 몰라.

2.
 전공수업에서 엘지 글로벌챌린저 준비를 한다. 너무 짜증난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꽤 재밌다. 

3.
 배고파.

4.
 매초마다 의지가 필요하다. 사람들과 사람들의 피부 사이에는 에너지가 저릿거린다. 범퍼카처럼 전류가 흐른다. 방전되는 순간 나는 정지할 것이다. 관계는 폐쇄될 것이다. 방치될 것이며 머지않아 폐기될 것이다. 매 순간 힘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자유주의적 도태와 완전히 다른 말이다. 나는 신자유주의의 악덕을 빌어 게으름을 정당해왔다. 비겁한 변명이었다. 계량할 수 없는 시간의 단위 속에서도 전자들은 원자 안을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뉴런끼리 신나게 박치기를 하고 세포는 호들갑들을 떤다. 살아있는 한 쉴새 없이. 이왕 생명인 김에 좀 나태해지더라도 신체나 정신 어느 한 구석에서는 꽤 유용한 스파크를 튕길 수 있어야 겠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 이외의 좀 맘에 드는 종류의 스파크를 창출하고 싶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류가 찌릿찌릿 흐르는 범퍼카 신세로 태어난 이상, 별 수 없다.

                                                                                                                                                                                                                                                                                                                                                                                               

일기

 엊그제 밤에는 누가 보고 싶었다. 한참 지난 후에야,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연애감정을 느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했다. 그 사람을 돌이켜 보려고 그 시기의 일기장을 들췄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읽는 동안, 잠시나마 그때의 마음이 되어 가슴께의 근육이 미세하게 수축하는 것을 느꼈다.
 
 기록에 드러난 십대 후반의 나는, 놀라울 정도로 감성적이고 예민하고 풍성했다. 모든 감각이 한껏 개방되어 있었다. 인류가 오랫동안 십대의 시간을 찬탄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19세의 시간은 확실히 자극적이다.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학교에 갇혀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 졸며 보낸 나의 19세 마저도 꽤나 자극적이었던 것을 보면 그렇다. 흡사 멸균실같은 지루하고 정적인 환경에서도 나는 자주 자지러지고 소스라쳤다. 

 나는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자주 썼고 가끔 울고 매일 꿈을 꿨다. 그 꿈은 '장래 희망'이 아니라 '몽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밤새도록 베란다에 붙어 종이 비행기를 접어 날렸고, 아침저녁으로 비눗방울을 불었다. 남몰래 혼자 독서실을 빠져나와 하릴없이 걸었다. 소도시의 담백한 야경과 피부에 붙던 어둔 공기가 잊히지 않는다. 교실 창틀에 앉아 나뭇가지로 낚시를 하고, 짝짓기를 하는 잠자리떼에게 crazy in love를 불러줬다. 바다와 같았던, 비 그친 대낮의 운동장 한켠에서 동급생들이 맨발로 축구 차는 것을 보았다. 담을 넘어 닭꼬치를 사먹고 학교로 돌아와 운동장 한가운데에 앉아 별을 봤다. 조회대 지붕에 얽힌 포도덩쿨을 우산으로 흔들어, 후두둑 떨어지는 포도알들을 치마폭에 담았다. 말갛게 씻어서 교무실에 들어가 선생님들에게 나누어줬다. 

 세상을 꿈처럼 소비하던 그 자극적인 시간에, 그 사람은 나와 일종의 연애놀이를 했다. 그것은 확실히, 완전히 '놀이'였다. 어린애들의 소꿉장난 같은 것, 아이들조차 믿지 않는 역할놀이 말이다. 그 사람은 어른인데다가 유부남이고 아이가 둘이 있었고 선생님이었고 우리반 담임이었다. 그 사람은 아이가 둘이었지만 삼십대 초중반으로 나이가 젊었고 그나마 괜찮은 외모(...)로 학교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 이렇게 쓰고 나니 엄청 위험한(또 역겨운) 장난 같은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 '놀이'는 연속적이지도 지속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종종 농담처럼, 가끔씩 생각나면 던지는 일종의 '드립'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피부부터 민감한 열아홉이었고그 '드립'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렸던 것 같다. 나는 태생부터 둔감한 여자니까, 당시에는 내가 ...'빠졌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이 '놀이'가 재미있어서 좀 더 연속적이고 지속적이면 좋겠다고 바란 것 뿐이었다.

 그 사람과 같은 동네에 살았다. 집근처에서 종종 마주쳤었다. 학교에서와 꽤 거리가 있는 '생활인'의 모습을 한 그 사람이 웃겼고 그걸 나만 아는 게 즐거웠다. 학교가 파하고선 집까지 같이 걸어가는 날들도 있었다. 중간에 빵집에 들러 군것질거리를 사주기도 했다. 같이 하교하던 어떤 날에는, 다른 학교 친구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는 나에게 귓속말로 '남자친구야?'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우리 담임쌤이야, 라고 대소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의 오해가 우습고, 또 좋아서 한참 웃었다. 학교에서 한번은 그 사람이 내 손목을 잡고는 한참을 말없이 성큼성큼 걸어간 적도 있다. 토요일, 수업이 일찍 끝나 친구들과 같이 하교하는데 차에 타고 있던 그 사람이 느린 속도로 차를 몰며 내 걸음을 따라오며 말을 건 적도 있다. 마치 자기가 미니시리즈 남자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그 사람도 이 역할극을 꽤나 즐기긴 했던 모양이다. 수능이 백일 정도 남았던 어떤 날에는 이유없이 감성이 폭발하여 눈물을 질질 짜는 나를 오랜시간 공들여, 다정하게 달래주고는 집까지 바래다줬다. 수시 상담을 하다가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집에 가겠다는 나에게, 담임으로서 말릴 생각도 않고 함께 가자며 얼른 독서실 올라가서 짐을 싸오라고 말한 적도 있다. 같이 집에가던 길에 그 사람에게 삶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엉뚱하게 '너'라고 답했던 얼굴도 기억한다. 얼마 후 그 말이 웃긴 농담이 되어 반 애들 사이에 돌았는데 그 이야기의 출처가 그 사람이어서 놀랐던 기억도 있다. 

 학기 말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사람과 나 사이는 틀어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과 우리 반 전체의 사이가 틀어져서, 수능 전날까지도 그 사람은 우리에게 수능 잘 치라는 말 한마디도 제대로 건네지 않았다. 그 사람이 선생으로서 큰 그릇이 아니라는 것은 어린 학생과의 유치한 연애 놀이에 꽤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마음이 따뜻하기는 했으나 유능한 선생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배려 있는 선생도 아니었다. 학년 초에는 그 사람에게 집단적으로 호감을 보였던 우리반 애들 중 다수는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다. 나는 느닷없이 등을 돌린 그 사람의 모습에 힘들어 했으나, 그 힘든 마음이 그 사람 때문이라고 인정하기 싫어했다. 심지어는 냉담해진 그 사람 때문에 우는 날도 있었는데 그 때에도 단순히 학생으로서 담임에게 느낄 수 있는 서운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사람을 좋아했다고 인정하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 첫 연애를 시작하고 난 후였다. 그 설렘과 그 긴장과 그 서운함의 무게와 빛깔이 연애시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했다. 그 사람은 나를 좋아했을리 없지만. 그 사람은 나와 놀이를 하는 와중에도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자랑하듯 얘기하길 좋아했다. 아이들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사실 무엇보다도 여드름안경단발 삼단콤보로 생애 중 최악을 기록했던 내 외모가 그가 (행여라도) 날 좋아했을 가능성을 제로에 수렴케 하는 가장 큰 이유긴 하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했을리는 꿈에도 만무하고, '놀이'고 뭐고 그냥 좀 잘해준 친한 학생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을 공산이 크지만, 그래도 그 시기의 내게 그런 역할극과 또 그런 감정이 주어졌다는 것은 퍽 감사한 일이다. 명문사학의 이름으로 여학생을 無性의 인간으로 길러내던 그 네모난 공간 속에서 쌈박한 짝사랑 상대도 없이 마냥 명랑한 일화 일색으로 마감될 뻔한 십대 후반의 시절을 그런 방식으로나마 분홍빛으로 물들여 준 것에 대한 일말의 감사 말이다. 덕분에 참 마음에 드는 열아홉의 기억을 갖게 됐다. 오랫동안 그 사람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번 스승에 날에는 감사 문자나 한 통 보내드려야지. 그 '감사'의 진짜 까닭은 꼭꼭 숨긴채로 말이다.

 괜히 글이 길어졌다. 암튼 오랜만에 고3 일기 일독한 후기 끝! 기분이 엄청나게 물렁해졌다.

책을 읽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픽션들(여전히..)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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